며칠 전 낮에 혼자 조용히 영화 '승부'를 보고 왔습니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사실 바둑이라는 소재가 낯선 소재일 수도 있지만 오래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바둑기사로 성장했던 남자 주인공이 너무나도 친숙했기때문에 마냥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바둑은 지루한 싸움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생각보다 훨씬 깊은 울림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바둑기사는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바둑을 전혀 몰라도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실제로 보니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 그리고 바둑판 위에 얽힌 인생 이야기가 워낙 탄탄해서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
영화 '승부'는 바둑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인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바둑계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던 바둑의 신화로 알려진 조훈현 9단과 그를 넘어서야 했던 제자 이창호의 관계를 통해 ‘진짜 승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조훈현에게 발탁되어 철저히 훈련받은 이창호는 누구보다 바둑을 사랑하고 바둑 세계에 빠져든 인물입니다. 처음엔 스승의 뜻을 따르던 제자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조훈현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자신만의 길을 고민하게 됩니다.
조훈현은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모든것을 바쳤고 누구보다도 철저한 승부사입니다. 이창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바둑판 위에서는 단 한수도 허투루 두지 않는 냉정한 전략가입니다. 이들은 오랜 시간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경하지만 결국에는 바둑판 위에서 마주해야 하는 숙명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이나 도전의 구도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 안에 담긴 묵직한 감정, 고요하지만 깊은 갈등 그리고 결국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굉장히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연출이 바둑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둑이라는 소재를 빌려 인생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내면에 쌓여갔던 외로움을 그려낸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 소개
조훈현 9단 (배우 이병헌)
국민적인 바둑 영웅이자 누구보다 승부에 철저한 인물입니다. 그는 언제나 냉정하고 흔들림 없는 태도를 유지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언젠가는 제자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불안함과 긴장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병헌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이번 역할 또한 너무나 훌륭하게 잘 소화해 낸것 같습니다. 말수가 많지 않은 조훈현이란 캐릭터를 감정, 눈빛 그리고 표정으로 절묘하게 잘표현했으며 인간 조훈현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의 신문기사에 실렸던 사진 몇장으로 조훈현을 표현한 이병헌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이 영화를 관람하게 만드는 시작이었는데 역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존인물 조훈현도 이병헌의 연기에 "나인줄 알았다"라는 감상평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창호 (배우 유재명)
이창호는 조훈현의 제자이자 후계자로 선택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조용하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집중력과 내면의 힘이 대단한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조훈현의 제자로 철저히 바둑에 몰입해 살아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의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유재명이라는 배우는 이창호의 무게감 있는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유재명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조연들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 같습니다. 바둑계 인물들 뿐만아니라 가족과 지인들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승부의 한가운데에 있는듯한 모습으로 긴장감을 채워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바둑이라는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의미있는 흐름을 보여줬습니다. 단지 바둑판 위의 두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서로 밀고 당기며 이야기를 쌓아가는 구조가 인상 깊었습니다.
관람 후기
'승부'는 경쟁을 주제로한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자극적인 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영화를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대사가 많지도 않고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긴장감과 감정의 무게는 그 어떤 스릴러 못지않습니다. 바둑이라는 소재가 익숙하지 않아도 인간관계와 감정의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가 바둑을 단순한 경기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거는 ‘무언의 싸움’으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앉아 있는 자세, 손의 움직임 그리고 눈빛만으로도 인물의 내면이 느껴졌습니다.
스승이면서도 더 이상 길을 가르칠 수 없는 순간과 제자이면서도 그 이상을 넘어야 하는 책임감이 지금 우리들의 겪여내야할 문제(부모 자식간의 거리, 직장 상사와 후배와의 관계 등) 와도 닮아 있어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40대 초반인 저로써는 바둑이라는 세계가 그렇게 친숙하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평범하지만 중요한 메세지를 풀어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를 같이본 가족이 있었따면 이런저런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아지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현재 삶의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는 분들에게는 깊은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니 영화 '승부' 를 관람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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